나는 기독교 신자이다.
최근 교회에서 안식에 대한 설교를 듣고, 안식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맘에
문득 예전에 선물 받았던 이 책을 다시 읽었다.
문학적이고 시적이며, 감각적인 표현이 많아 얼마 읽지 못하고 덮어뒀던 책인데,
필요와 목적을 갖고 읽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저자 : 아브라함 헤셸
20세기를 대표하는 유대교 신학자로서, 나치에 의해 독일에서 추방 당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흑인 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에 앞장 서고, 소련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자유를 위해 활동했다고 한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대화에 주도적인 역할도 감당했다는 그는 깊이 있는 사상가이자 인권운동가,
무엇보다 신실한 유대교 신자였다.
안식 : 시간의 모습을 띈 영, 한 주의 진정한 주인공
사랑의 상징이자 신부의 식물인 '도금양'을 들고 안식일을 맞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후 거룩하게 구별한 일곱째 날인 안식일에는 영원의 비밀이 담겨 있다.
안식일에는 여분의 영혼이 있고, 그 영을 여왕처럼, 신부처럼 맞이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태초의 빛이 서려 있다.
현세에 있으면서도 천국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는 유대인들에게는 해결하기 힘든 명제가 있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면서 자유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물과 더불어 살면서 사물에 예속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그 비밀을 안식일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거룩히 구별하신 영의 시간, 안식일을 올바로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가
천국을 바라는 마음의 핵심이고, 그렇게 마음과 시선을 하늘에 두면
이 땅의 것들, 공간 세계에 속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세 속에서 참 자유를 맛보기 위한 영원의 비밀이 담겨 있는 날이 바로 안식일이다.
그러므로 이 안식일은 노동하는 여섯 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섯 날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한다.
안식일은 한 주의 완성이자 진짜 주인공이다. 삶의 절정이다.
안식일을 올바로 지키는 것
유대교의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에 지켜야 하는 금지조항이나 명령이 많다.
이는 율법을 따르는 자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쁜과 즐김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안식일이 그대에게 주어진 것이지, 그대가 안식일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는 고대 랍비들의 말처럼
안식일에는 유희를 위한 경거망동과 노동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나친 경건도, 의로운 분노도 모두 불필요하다.
그저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 감사와 기쁨의 교제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영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한다.
시간에 대한 깨어있는 이해
이 책의 시간에 대한 통찰력은 종교심을 떠나 읽는 모두에게 유익하다.
유대교는 공간의 종교가 아니라 시간의 종교다. 특정 공간, 특정 사물에 신성을 부여하는 여타 종교와는 다르게,
유대교는 이 땅의 어떤 것에라도 신성을 부여, 즉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한다.
사물이나 장소에 연연하지 않고 사건과 역사를 통해 스스로를 계시하는 하나님을 믿는 유대 랍비들과
책의 저자는 공간보다 시간의 가치에 주목한다.
소유하고, 점유가 가능한 공간과 달리, 누구도 소유하고 통제할 수 없고, 단지 공통으로 주어질 뿐인 시간
존재는 그 자체로 설명되지 않고 시간을 통해서만 설명된다.
공간이 없는 시간은 소유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는 공간은 소유할 수 없다.
우리의 영혼이 공간의 사물을 타고 가면서 시간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삶은 공간의 세계가 시간의 무한한 영역을 그저 달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
결코 사멸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공간의 일부를 점유하고 살 뿐이라는 것.
그러나 공간의 세계는 곧 시간 속에서 소멸한다.
점유되거나 통제되지 않고, 구분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간은 거룩성을 띄고 있다.
삶에서 공간과 사물보다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지점에서 각자의 상황 속 각자에게 맞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이 공간을 정복하여 이뤄 낸 결과인 기술문명 속에서, 공간과 사물에 현혹되지 않고,
영원과 거룩을 상징하는 시간에 시선을 둔다면,
시간을 공간과 맞바꾸는 삶에서 벗어나 세속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을 영으로 채울 줄 아는 사람은, 영원에 비밀을 간직한 안식일을 동경하는 사람이며,
안식일을 동경하는 것은 공간 속에 있는 사물을 탐내지 않고 시간 속에 있는 영원한 보물을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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